□ 작품해설
金丹과 理化世界를 꿈꾸며
-조한석 시집『순간이 행복으로』에서
이 만 재
물질과 정신만이 궁극적으로 실재한다는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한 데카르트의 말에 의하면, 우리의 육체와 의식이라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사물에 대한 감각과 합치한다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은 물체라는 실체이며, 비물질적인 것은 정신이나 영혼이라는 실체이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이처럼 이중적 본성을 체험해 왔다. 보편적 상식常識과 더불어 이성理性을 지님으로써 우주와 거기에 포함된 모든 것이 관념觀念의 구현이며 창조주의 가공물이란 생각을 해왔다. 인간은 누구나 물질적인 육체와 비물체적인 영혼을 소유하는 이중적인 존재이다. 자유 의지라는 천성 때문에 각자 인간은 신탁神託하여 불멸적인 영혼을 구제할 건지, 아니면 신탁을 거부하고 영혼을 상실할 건지를 결정할 도덕적 선택권選擇權을 가지고 있다. 모든 문명은 어떤 형태의 종교나 유일신 또는 다신多神에 관한 관념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상식적으로 인간은 초자연적인 세계관을 꿈꾼다.
선경仙經[道經]에서 태극太極이란, 물物도 없고 질質도 없고 형形도 없고 색色도 없어 지극히 공허하고 고요한 상태, 그러나 무無라 하면 무엇이 있는 것 같고, 유有라고 하면 아무것도 없으나 이 허무한 태극 속에는 모든 조화력造化力을 지닌 만능萬能의 체體로 우주로는 천지가 생기기 이전, 사람에 비유하면 모태母胎에 수태되기 직전에 해당된다. 이때가 바로 사람에게는 선천先天에 속한다. 즉 사람이 모태 안에 있을 때를 일컫는다. 출생 직후라든지 강보에 싸여 수유를 할 때는 사물을 구분할지 못하므로 선천에 속한다는 것이다. 출생한 뒤가 後天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좋고 나쁜 사물을 알게 되면서 후천에 속한다. 선도仙道란 이러한 후천에서 선천으로 이르는 과정이며 목적지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요소를 상기하면서 61편의 시의 중심사상을 들추어보기로 하겠다.
① 명상冥想 중에/삶의 목적을/홍익인간에 두어/소박한 깨달음 모아/두루두루 조화調和시켜/기쁨 함께 누리려합니다
-시「기쁨」의 일부
② 한번 쯤/하늘 보며/푸른 바다 상상하는/시인이 되고//하루 쯤/지나온 날 반성하며/이화세계 설계하는/여유 가져//삶이 끝나기 전/이야기 나누었던 사람/모두와/살포시 웃음 지었으면
-시「기도」의 일부
③ 업신여기지도/알아 달라 보채지도/험담하지도 않으며/묵묵히 기다리며//혼을 위해/소임所任이 있을 때까지/또 다시 꽃피우며/이화세계理化世界 기다리네
-시「들꽃으로」의 일부
④ 남아있는 시간/남 배려하며/얼을 일깨워//오도송悟道頌 부르는/선인仙人들과/이화세계 가렵니다.
-시「얼Ⅰ」의 일부
⑤ 이화세계理化世界 품으며/얼 계신 자리/맑게 하였을 때//기쁨이 솟아나/일그러진 얼굴에/웃음꽃 머물고
-시「웃음 꽃Ⅰ」의 일부
⑥ 해님이 방극 웃어/배란다 문 활짝 열면/은은한 난향蘭香/살포시 감싸 주듯//길 잃어버린/저를 감싸 안으며/이화세계理化世界로/앞서 가고 계시네요.
-시「理化世界Ⅰ」의 일부
⑦ 어느 봄날//천모산天母山 정상에서/결가보좌하고/명상을 하던 중에/상큼한 바람이 스치며/조릿대들이/나부끼는 소리와 함께//창공에/붉게 새겨진/천부경天符經을 보며//나는/다짐 하였지요.
-시「理化世界Ⅱ」의 전문
⑧ 마음 한 자락/국화菊花 한그루 가꾸어/그 꽃보다 더/향기 배어났으면//그리하여/치우천왕의 모습으로/이화세계 향해/앞서가고 있네.
-시「새해 소망」의 전문
홍익인간 정신은 민주헌법에 기초를 둔 교육법의 기본정신이다. 교육법 제1조에,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구유하게 하여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 공영에 이상 실현에 기여함에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있다. 홍익인간이란 말은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 즉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이는 특정집단이나 개인의 이익보단 모두를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길임을 깨닫게 한다. 환웅이 환인에게 받은 천부인, 거울과 칼과 방울에서 이 정신이 깃들어있다. 바로 우리나라 정교政敎의 최고정신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시인 조한석의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화세계’는 ‘순리[理致]에 맞는 세계’, ‘도덕성이 높은 사회’,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길 희원하는 마음을 시편 속속들이 양각되어있어, 퇴색되어가는 민족적 정기精氣를 일깨워주는 듯하다.
한자 81개로 된 천부경天符經을 우리민족의 철학[調和의 原理]이자 고대 경전으로 보는 학자도 없지 않다. 대종교의 주요한 경전이다. 그 내용은, ‘1) 하나는 시작 없는 하나에서 비롯되어, 세 끝으로 나눠도 바탕은 다함이 없네. 2) 하늘 하나가 첫째, 땅 하나가 둘째, 사람 하나가 셋째로다. 3) 하나가 쌓여 열이 되고, 그 켜짐이 모자라지 않으면, 셋이 되나니. 4) 하늘 둘이 셋, 땅 둘이 셋, 사람 둘이 셋, 이는 큰 셋이로다. 5) 큰 셋을 여섯으로 모으고 일곱, 여덟, 아홉을 낳고, 셋, 넷을 움직여 다섯이 일곱 지난 사람을 이루도다. 6) 하나가 묘하게 퍼지니, 모든 것이 오고 모든 것이 가도다. 7) 하나의 쓰임은 바뀌어도, 바탕은 움직이지 않네. 8) 참 마음으로 참 태양을 바라본다. 9) 사람 속에 하늘과 땅이 하나임이 명백하도다. 10) 하나는 끝없는 하나에서 끝나네.’로 되어있어 워낙 난해하여 그 해석이 분분하다. 여타 종교에서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 경문經文을 베끼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시인 조한석은 천부경을 20,000번이나 사경寫經했다니, 그의 민족종교에 대한 집념은 실로 놀랍다.
① 청년들이 새마을운동 한다며/허물어버린 석탑/큰 구렁이가 두 마리 나와/한 마리 도망가고/잡은 구렁이 죽이고 나서/미치고,/죽고,/어지러운 사건 계속 일어나/9년이 지나도록 이러쿵저러쿵하다
-시「더그네 石塔 전설」의 일부
②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깨달음을 얻기 위해/정진하는 의지//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에서/십은 조화 화합 완성의 수//스스로 조화 화합 완성을 이루지 못하면/타락 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네.
-시「我理郞」의 일부
패러디(parody)의 어원인 ‘paradia’는, '다른 것에 대한 반대의 입장에서 불러진 노래‘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더 오래된 낱말로 추정되는 'paradio’는, ‘모방하는 가수’를 뜻한다. 다른 사람의 작품이나 문체, 구절, 제재, 사건 등을 모방하여서 내용이 전혀 다른 것을 표현함으로써 외형과 내용에서 부조화로 인해 얻어지는 해학, 풍자를 나타내는 방법이다. 상반된 어원에서 보듯이, 인유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패러디는 ‘반대와 모방’ 또는 ‘적대감과 친밀감’이라는 상호모순의 양면성을 띤다. 이러한 모방과 변용이 패러디의 기본개념이다. 인용한 시①은 새마을운동에서 전통의 파괴를, 시②는 민요인 <아리랑>을 희극적으로 풍자한 기교技巧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① 생활 중에/불편한 곳이 있으면/잠시/마음을 단전에 집중하며//호흡에 맞추어/근육을 끌어당기고 늘여주는/도인체조導引體操로//긴장으로 굳어져 있는/근육과 인대를 풀어주고/명상으로 마음 다스리세요.
-시「건강 운동」의 일부
② 발병發病되어지기/이전以前에/항심恒心으로//몸은 유연柔軟하게하고/마음을 다스리는/선도仙道 수련해 보세
-시「마음수련Ⅱ」의 일부
③ 우주와 땅과 내가/三位一體되어/기를 단전에 모으면//병들어 망가진 몸/부작용 없이/회생시킬 수 있는데
-시「우주의 법칙」의 일부
④ 마음속에 응어리 담아/병을 키워놓고 나서도/욕심 버리기가 아쉬워/그냥 움켜쥐고 있다가//병들어 버린 몸뚱이/어떻게 든 고쳐보겠다고/소문난 의사만 찾아/이리저리 헤매고 있네
-시「인연의 그림자」의 일부
⑤ 삶의 끝자락에서/깨우치고//선도仙道수련하니/청춘 즐거워 춤추네요.
-시「청춘은」의 일부
단전丹田은 배꼽 아래로 한 치 다섯 푼 되는 곳을 말한다. 즉 아랫배의 중앙인 셈이다. 그리고 단전호흡이란 단전으로 숨 쉬는 일종의 정신수련법이다. 선도仙道를 다른 말로는 단도丹道 또는 금단도金丹道라고도 한다. 선도는 원래 노자老子의 도학道學[道經]에서 창시되었으므로, 노자를 도교道敎의 원조元祖[敎祖]로 삼아, 원시천존元始天尊 또는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 불린다. 선도는 기氣를 운용하는 양생법養生法은 출생 후에 잃어버린 단丹을 회복하는데 있다. 인용한 시편에서 보듯이 동양사상에 심취한 시인 조한석은 이와 같은 선도수련의 길을 권장하고 있다.
동양의 삼대종교로는 공자의 유교儒敎, 석가의 불교佛敎, 노자의 도교道敎를 꼽는다. 유교는 존심양성(存心養性 : 마음을 가지고 착한 성품을 길러나감), 불교는 명심견성(明心見性 : 마음을 맑게 하여 본성을 깨달아 봄), 도교는 수심연성(修心煉性 : 마음을 닦아 성품을 단련함)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 모두가 마음을 가지고 본성을 닦는 것이 도道의 목적임을 전파한다. 마음을 닦으면 몸이 편하다. 그러나 생자필멸生者必滅, 단전호흡이 좋다고 해도 불로장생은 결코 불가능하다. 하지만 건강유지와 심신수양에 있어 이러한 수련법이 적지 않은 효과를 거두리라 생각된다.
① 먼 하늘 아래 공룡능선 희미하게 보여/반가부좌하고 살며시 눈 감으니/능선아래 절경들을 품어 안은/설악산이 반겨주고
-시「아름답다, 그 모습」의 일부
② 우주의 진리이시여/우리에겐 완전한 사랑이십니다//도리를 알고 행동 바로하면/깨달음 얻게 하시고
-시「하늘이시여」의 일부
③ 불안한 마음 흔들릴 때/탁한 기운 혼문으로 스며들어/마음 한곳 차지하고서/떠날 생각 없다고//다시는/떠밀려 나가기 싫다고/게으름 피우며/끝없는 욕망 키우라 꼬드기네.
-시「혼문」의 일부
④ 목숨 걸만한 깨달음은/신념에서 나오며/어려운 상황 와도 흔들리지 않아//아무리 성공 했어도/목숨 걸만한 가치를 찾지 못하면/그 성공은 허망한 것
-시「망상」의 일부
⑤ 세상사/사람이 해결 한다는데//육감으로 해결 하려면/살아남기 위한 이전투구 되겠고//생각으로 해결하려면/미친 사람 취급 받겠고//직감으로 해결하려면/실없는 사람 되겠지요//이 모두 조화롭게 하여/세상사 슬기롭게 풀었으면//세상만사 있는 그대로/돌아가는 것을
-시「살다보면」의 전문
인용한 시편에서는 시인의 인생관, 우주관 그리고 사상이 속속들이 드러나 있다. 선도를 통하여 얻은 산물일까. 이 시집에서 큰 줄기는 유심사상唯心思想이다. ‘삼계三界에 속하는 것은 모두 이 심心뿐이다’라고 하는『십지경十地經』의 경문에서 나올 법한 유심사상이나 유식사상唯識思想이 그렇다. 즉 이 마음[心] 밖에는 어떤 경계도 없기 때문에 마음[唯心]이다. 정淨이다 부정不淨이라고 하는 것도 오직 심心이기 때문에 심心을 떠나서는 어떤 법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희비애락喜悲哀樂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여러 가지 형태의 인공물人工物은 물론 산천초목과 같은 자연물自然物까지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심心은 유일심唯一心일까, 다심多心일까, 염심染心일까, 정심淨心일까, 망심妄心일까, 진심眞心일까, 아니면 진망화합심眞妄和合心일까하는 문제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해석되어야 하기에 한 마디로 단언할 수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심心이 만물을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체험과 이미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이다. 현대시가 체험體驗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현대시는 이미지의 미학이라는 결과가 필연하다. 그것은 관념의 거부로부터 실념實念에 의한 실체나 실물, 실제나 실존의 추구를 중시한다. 조한석의 시세계는 마치 선시禪詩의 현장처럼 느껴진다. 장애도 없고 걸림도 없이 외계의 일체 선악善惡의 경계가 마음에서 일어나지 않는 항심恒心, 속으론 자성이 움직이지 않고 밖으론 능히 일체 현상의 방해도 없어 속이 어지럽지 않은 선경仙境에 든 기분이다. 모름지기 시집『순간이 행복으로』이 많은 독자의 가슴에 울림으로 오래 가길 바란다.
<끝>
* 이 시집은 2009년 5월 중순에 청어출판사에서 발간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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